[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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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점 사이트인 레터박스(Letterboxd)에는 '성배(Grails)'를 찾는 기사들과 이들을 교환하는 해적들의 은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성배란 그냥 단순히 말해, 인터넷에서 구하기 힘든 몹시 희귀한 영화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레터박스에 'Grails'를 검색해보면 [그림 1]과 같이 유저들이 올린 여러 성배들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다수는 비공개 트래커 같은 가장 은밀한 경로에도 올라오지 않아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는 영화들이다. 각자의 성배의 명단은 유저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성배의 명단들은 어느 정도 공통의 목록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희귀한 영화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네필들 공통의 수요가 있는 영화들이라는 걸 암시한다.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시계>는 대표적인 성배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여러 영화에서 시계가 나오는 장면, 혹은 대화 속에서 시간이 언급되는 장면의 수천 개의 클립을 따와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synchronization) 시킨 작품이다. 가령, 관람자가 2시 30분에 해당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게 되면, 작품에서 보이는 시계도 2시 30분을 가리키거나 하는 식이다. 해당 작품의 감상용 사본(viewing copy)이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¹⁾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파일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작품의 일부분만을 찍은 '캠버전'은 유튜브에 올라온 기록이 있지만 마클레이 본인의 저작권 신고로 인해 삭제되었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비메오에는 오후 3시가량 부분을 찍은 캠버전 영상이 남아있다) <시계>의 파일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24시간이라는 러닝타임도 문제겠지만,²⁾ 마클레이가 작품에 사용된 영화 클립들의 저작권을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클 것이다. 해당 작품은 6개의 한정판으로 여러 갤러리들의 입찰 전쟁을 통해 5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에 판매되었고, 마클레이가 이를 통해 상당량의 수익을 창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마클레이에게 관련된 소송이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시계>의 카피가 유출되고 인터넷에 퍼지게 되면 원치 않는 까다로운 법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마클레이나 기관들이 철저히 게이트키핑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시계>를 상영하는 기관들은 상영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해당 작품에 대한 상영료를 받지 않고 입장료의 일부로 해당 작품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사정상 <시계>가 인터넷에 풀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국내의 작품들 중에서는 (<만추> 같은 작품을 논외로 한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서 내부 VOD 서비스로만 감상이 가능한 배용균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이나, 2011년 이후 극장에서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는 김동주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³⁾ 같은 작품들을 성배의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듯 어떤 영화가 성배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건 크게 두 가지 경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영화의 디지털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필름으로만 볼 수 있거나, 아니면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극장이나 전시장에서 대면으로 봐야만 하는 작품의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감독들의 미학적인 고집에 기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새니얼 도어스키, 제롬 하일러, 로버트 비버스와 같은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디지털화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셀룰로이드의 수호자들이다.⁴⁾ 국내의 사례로 한정하자면 자신의 영화들을 극장 상영만을 전제로 하고 상영하고 있는 정재훈 같은 감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반드시 극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들을 캠버전으로 밀수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새니얼 도어스키, 제롬 하일러, 데이빗 개튼, 앤드류 노렌 같은 실험영화 감독들 작품의 캠버전은 그 자체로 비합법적이지만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카피로 간주되어 성배 교환 네트워크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며 교환된다. 이런 캠버전들은 아주 협소한 성배 교환 네트워크 내부에서 순환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그 네트워크 바깥으로 유출이 되기도 한다. 그 경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건, 2020년을 기점으로 너새니얼 도어스키의 몇몇 캠버전이 유출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그림 2] 너새니얼 도어스키 작품들의 유출

[그림 2] 너새니얼 도어스키 작품들의 유출

"도어스키의 <노래와 고독 Song & Solitude>과 <사라방드 Sarabande>를 이곳에 업로드하지 말아 주세요. 그 파일들은 제 친구가 찍은 캠버전인데요, 그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했을 뿐, 다른 곳에는 업로드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서버에 게시되면 자동적으로 트래커, vk, 유튜브로 퍼지게 될 것이고, 제 친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정말 바라고 있어 그를 대신하여 부탁드립니다. 이 점을 존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도어스키는 이미 DVD로 나와있는 디지털 카피도 용인하지 않아요. 그것들도 단지 영화제의 미리보기용 사본일 뿐입니다. (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어스키의 몇몇 작품들의 파일은 퐁피두 센터에서 만든 감상용 DVD에서 리핑된 것이다.) 제 친구는 영화 학교 학생이고 개인적인 참조용으로 캠버전을 찍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했는데요, 불행히도 그들 중 누군가 영화 파일을 다른 사람한테 보낸 모양이라, 영화들이 유출 직전에 있습니다."

영화 학교 학생이 개인적인 참조 용도로 찍은 캠버전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유했지만, 그들 중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파일을 보내 그것이 유출된 경우. 위의 부탁이 무색하게도 해당 작품들은 디스코드로부터 인터넷 방방곡곡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렇듯, 영화 파일의 유동성은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배들의 캠버전을 공유/교환하는 네트워크 내부에서는 신용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가령, 교환하는 파일을 다른 곳에 업로드하지 않고, 타인에게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규칙이다. 이를 어기는 자들은 불명예의 전당에 안치되어 어떠한 영화도 공유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상당히 협소한 클러스터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파일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 공유했고 하는 것들이 가시적인 편이다)

[그림 3] (좌)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의 <Himself as Herself> 캠버전 (우) <Himself as Herself> 스틸샷.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 제공 (https://harvardfilmarchive.org/calendar/himself-as-herself-2003-03)

[그림 3] (좌)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의 <Himself as Herself> 캠버전 (우) <Himself as Herself> 스틸샷.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 제공 (https://harvardfilmarchive.org/calendar/himself-as-herself-2003-03)

[그림 4] 제롬 하일러의 <Marginalia> 캠버전

[그림 4] 제롬 하일러의 <Marginalia> 캠버전

이와 같은 캠버전들은 앞좌석에 앉은 이의 머리가 화면의 상당수를 가리는 파일부터, DVD와 비교해서도 훨씬 더 나은 관람 경험을 제공해주는 파일까지 아주 다양하다. 삼각대에 DSLR을 고정하여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제롬 하일러의 <Marginalia>의 캠버전은 일반적인 SD 화질의 영상보다도 훨씬 더 나은 관람 경험을 제공해주지만, 저화질의 캠코더 혹은 오래전의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풀로스의 <Himself as Herself>의 캠버전은 [그림 3]과 같이 원본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캠버전은 작품의 문턱에 있는 일종의 파라텍스트로 기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