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기법 정리)
[음반] ‘노래’
“인용문” “글 내 강조”
<영상 작품> <미술 작품>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단행본』 『매체명』 「논문/기사 제목」
2000년대의 온라인 공간에서 ‘호러’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제공되었던 작업물들의 작동법을 가장 짧고 굵게 요약해주는 것은 제러미 윈터라우드(Jeremy Winterrowd)의 웹사이트에 실린 <미로 (The Maze)>였다. 국내에서는 “마우스/키보드 피하기 게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플래시 게임의 규칙은, 다른 모든 유사한 게임들처럼 벽이나 장애물에 커서가 닿지 않도록 조종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로>에서 중요한 것은 마우스 피하기가 아니라 4단계 중 3단계, 극도로 좁아진 길목에 집중할 때 즈음에 돌연히 나타나는 소리와 사진이다. 4단계 따위는 없다. <엑소시스트 (The Exorcist)>에서 악마에 들린 리건의 험악한 표정을 클로즈업한 것과 함께 째지는 비명 소리가 화면과 스피커/이어폰을 가득 채운다. 이때 느끼는 감정을 과연 ‘호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테러’라든지 ‘놀람’이 더 어울릴 것이며, 나는 다양한 줄임말과 조합어 중에서도 ‘쇼크 사이트’라고 이를 부른 인터넷 사람들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웹이 중앙화된 특정 플랫폼들의 꼴로 완전히 재편되지 않은 채 하이퍼링크를 타고 html 문서들을 건너 다녔다던 시절, 눈에 띠지 않는 배설물처럼 파묻혀 있던 이른바 ‘쇼크 싸이트’들이 제공했던 건 호러보다 더욱 값 싸고 질 나쁜, 생리적인 충격 그 자체였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양식을 따온 플래시 호러 게임들이 모호하게라도 섬뜩한 언질을 준 다음에야 점프 스케어를 내뱉거나, 카툰식 슬랩스틱에 그 논리를 따르지 않는 몸체를 부여했던 <해피 트리 프렌즈 (Happy Tree Friends)> 시리즈가 깜찍한 외형의 살덩어리 내장을 보여주는 건 예의 바른 축에 속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 고어 영화나 포르노그래피라거나 원인 모를 경로를 타고 촬영·녹화·보존된 스너프의 한 장면이 채 제한되지 않았던 웹의 느슨한 법망을 넘고 유통되어 예고도 없이 화면 가득 띄워질 때에는, 일시적인 놀람과 함께 곧장 연이어 무서움보다는 어떠한 역함을 느끼게 될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거기에서 뒤섞인 피학적인 매혹과 질겁하는 거부감 중에서 한쪽으로 결론 내리는 건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온라인 한 구석에 팽배해 있던 정서는 이를 으레 위반을 위한 위반이나 시시덕거리기 좋은 진풍경으로만 취급하는 편이었다.
<해피 트리 프렌즈>의 첫 에피소드가 연도 앞 글자들이 여럿 바뀌기 직전인 1999년 말에 공개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호러보다 쇼크에 더 가까웠던 2000년대의 이런 쇼크 사이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양상들이 온라인을 매개 삼아 극단적으로 증폭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조차 팝 록 밴드 주주클럽의 1996년도 얼트 록 트랙 ‘16/20’에서 주구장창 반복되는 “쇼킹 쇼킹”이 잠시간의 유행을 탈 즈음, 기괴함이나 역겨움은 차치하고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정상성에서 벗어나게 보인다면 다짜고짜 일본의 인터넷에서 들여온 “엽기”를 우산어로 들이밀던 시기라고들 하니까. 그 덕에 ‘호러’는, 여전히 낯선 미개척지처럼 받아들여졌고 실제로도 그러했던 원시적인 00년대 웹과 잘도 어울리게, 임의적인 악의를 가장 말초적이고 극단적으로 체화한 모양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충격 효과를 주된 전법으로 사용했던 온라인상 작업물들이 정말로 가져왔던 ‘호러’는 해당 사이트 자체의 온갖 귀신짤과 고어짤 따위에 내재되지 않았고, 그 대신에 웹을 돌아다니는 행위 그 자체에 부여되었다. 지금 요 알 수 없는 링크를 클릭하면 어떠한 웹페이지가 불러와질지 전혀 모른다는 이 만성적인 두려움으로. 또 원래는 나름대로 흥미롭고 화면에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무언가가 갑작스레 나타날지 모른다는, 도저히 경계를 풀 수가 없는 이 고질적인 긴장감으로.
오로지 기기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청각적인 두려움은 무척 실재적으로 다가왔고, 나는 여전히 이상한 구석에서만 겁이 너무 많다. 사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웹상의 뒷구멍들을 타고 형성된 이 엽기쇼킹 무법지대들을 현 시점에서 낭만과 향수로 감싼 채 추억할 만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게 내게는 좀 더 충격적이게 느껴지는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도 태국의 신타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플래시 게임인 <더 하우스 (The House)>의 (깜놀용 귀신 짤마저도 아닌) 스틸 샷은 물론 네 개의 음만을 반복하는 OST를 들어도 속에서 심리적으로 또 가끔은 물리적으로 경기를 일으킨다. 괴담 게시물에 삽입된 귀신 움짤과 정말로 그런지 궁금해서 검색 창에 입력한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의 결과 창, 아니면 웹상에서 나이브하게 링크를 클릭한 것에 천벌을 내리는 낚시용 싸이트 등으로 2000년대식 쇼크-호러의 미로를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통과했던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 이상하게 단련되는 동시에, 그보다도 여전히 이것에 놀라거나 말거나 싸구려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질리고야 말았다.
이 6부작 에세이 겸 연재 시리즈는 그러한 시기 이후의 인터넷을 배경으로 삼는다. 2000년대의 범-엽기시대를 겪기야 했다만, 나는 그 시간들을 제대로 된 기억으로 전환해 보관하지 못했다. 유튜브가 중앙화된 동영상 플랫폼으로 몸집을 본격적으로 불려가던 2000년대 중반이 슬슬 지나자 쇼크 사이트들이 선사했던 날 것의 충격은 릭롤링¹⁾이 선사했던 허망한 (그러므로 훨씬 더 “사용자 친화적인”) 충격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인터넷 상에서의 2010년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 진작에 손수 HTML을 짜 자신만의 웹페이지를 만들기보다는 특정 플랫폼에 개인정보만 입력해서 “인터넷”을 “얼마든지” “드넓게” 이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데스크탑과 랩탑뿐만 아니라 휴대전화기로까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이 시리즈에서 2000년대는 “근과거”인 2010년대에서 2020년대 초반의 “현재” 시점에 포섭되는 “과거”로서 다뤄질 참이며 내가 조금 더 확연한 기억을 가진 시기 또한 이 때다. 근원 모를 하이퍼링크 너머로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간단한 사실이 2000년대의 웹 형식에 맞춘 쇼크-호러를 만들었던 것에 비해, 새로이 부상한 웹의 형식은 과거와 꽤나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그러므로 2000년대 후반의 온라인에게는 새로운 양식의, 좀 더 정교한 공포가 요청됐다. 이미 저 모든 단순무식한 깜놀에 질려버리거나 ‘단련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며, 모든 것은 일찌감치 예비되었다.
다시 한 번, 이 6부작 에세이 겸 연재 시리즈는 대략 저 즈음부터 영어권 웹(과 물론 한국어권 웹)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내가 이런저런 일들 끝에 거의 말기 온라인병(terminally online)인 상태에서 이 장기-2010년대를 중심으로 온라인상의 호러 양식들과 그 주변부를 선별적으로 되짚어보는 글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웹을 형식 삼아 그 탄생과 발전, 그리고 쇠락이 이뤄진 류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체 현실 유령」은 “호러” 자체에 대한 글이기보다는 그러한 호러가 특정한 형식(form)으로 구성되고 전개되며 나타나는 방식과, 또 특정한 양식(style)에 따라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글이다. 때문에 이 시리즈는 안타깝지만 웹의 지반이 채 굳기도 전부터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호러 게임(물론 웹과의 친연성 덕에 종종 언급되겠지만)이나 웹 이외의 공간에서도 제작·유통되는 호러 영상물(물론 그 또한 웹과 영향을 친절히 주고받곤 하지만), 그리고 전달되는 공간과 방식에 맞춰 바뀌어 온 익명·실명의 픽션적인 호러 텍스트(물론 괴담마저도 웹의 한 부분을 오랫동안 차지해왔으며, 이를 위해선 로어프롬핑거스를 참고할 수 있다)를 주된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첫 줄에 썼듯, 나는 ‘작업물(work)’이라는 엉성하고 애매한 표현을 종종 사용하고자 한다. 이 작업물들은 웹상에 복붙 행위로 전파되는 텍스트-이미지-비디오 간의 느슨한 조합체와 구체적이거나 애매모호한 양태를 띤 채 인터넷 문화의 DNA로 작동하는 밈 사이 어딘가에 그 존재가 놓여있다. 이 작업물들은 저자와 그에 딸려오는 분명한 진실함이 언제나 살짝 모자란 채 온라인의 방식에 따라 구전되는 “로어 (lore)”에 실리고, 때론 그런 로어들을 줄줄이 매단 채 플랫폼과 알고리즘, 그리고 시간의 틈새들을 비집고 나타난다. 이 작업물들은 그렇게,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리고 신성한 모든 것은 저속한 것이 되는 웹상에서의 존재법을 따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그 이야기들을 퍼뜨린다. 이 작업물들을 마주했던 나는 종종 공포의 직전 단계를 밟아가며 그 정체 모를 외관상의 성질들에 매료되었고, 딸려 붙는 수많은 로어들을 구경하느라 플랫폼을 맴돌고, 특정한 검색어들을 타고서 URL 주소지들을 찾아가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