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호, 박동수 (영화평론가), 마테리알 편집진 (함연선, 금동현, 이하윤)

함연선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메일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2000년대 초반에 활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지금 동시대에 새로 만들 수 있을지?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인터뷰 부탁을 드리게 됐고 윤성호 감독님을 처음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질문지 읽어 보셨을 텐데, 독립영화에 대한 저희의 문제의식 같은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먼저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현 씨가 먼저 시작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금동현

활력연구소가 어떤 공간이었는지 간단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활력연구소와 같은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미디액트에 시네마테크의 느낌이 추가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뭔가 지금은 감상을 하러 가거나 창작을 하는 사람이 같이 안 섞여있는 느낌인데, 활력연구소 당시 문건이나 영상을 보면 좀 섞여 있는 느낌? 그런 어떤 추상적인 상상만 할 수 있더라고요. 건축가 김광수는 활력연구소 건축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통과(여행)와 목적지(도착)라는 개념이 동시에 존재하길 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활력연구소가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에 머무르려고 하려는 공간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윤성호 감독님께 드리는 이유는 2000년대에 이미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영화”, “충무로로 가기 위해서 만드는” 독립영화들 틈바구니에서 윤성호 감독님이 영화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메인스트림 밖의 대안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성향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김노경 평론가가 인디포럼 소개문에서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그런 대안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것, 포트폴리오용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제가 생각할 때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광기나 혹은.

윤성호

시장을 전제로 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영리하지 못한 행동일 수 있죠.

금동현

저는 그런 행동이 좋다는 입장인데, 표현하신 것처럼 영리하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배경이 활력연구소라는 공간이었는지? 아니면 ‘후보단일화대소동’과 같은 친구들 덕분이었을 수도 물론 있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 먼저 여쭙고 싶었습니다.

윤성호

너무 이렇게 오랜만에 소환되는 그리웠던 어휘들을 언급해주셔서 재미있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제는 해야 할 것 같아요. 메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활력연구소는 저한테는 되게 고마웠던 공간이고 그렇기는 한데, 그때 어떤 표상 중에 가장 푯대라고 보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건 활력연구소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활력연구소 딱 하나로 대표되기에는 너무 여러 가지 기운들이, 시장 바깥에서 우리가 뭔가 해보자, 해볼 수 있다. 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죠. 얄팍한 비유인데, 요새 제가 좋아하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로 치면. 활력연구소가 그중에 아이키라면, 그 바깥에 모니카도 있고, 가비도 있고, 노제도 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가 한 20년쯤 뒤에 지금의 댄스 열풍을 얘기하면서, ‘아이키’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라고 얘기를 하면, 아이키가 분명 잘하긴 했지만, 아 혹시 저만 아는 비유인가요? 스우파 혹시 아세요?

함연선

(웃음) 네, 완전 좋아합니다.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