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미널 스페이스와 백 룸, 시공을 로어화하기
“낡고 축축한 카펫의 악취, 단조로운 노랑 톤의 광기, 최대치로 웅웅대고 지직거리는 형광등의 끝없는 배경소음”이라는 문장은 현대의 따분한 휴게공간에 대한 러브크래프트적인 묘사라도 되는 것만 같다. 이 경우에 러브크래프트 같다는 것은 마냥 칭찬만은 아니긴 하겠지만. 그렇다면 “갇혀버리게 될 대충 6억 제곱 마일에 달하여 무작위로 구분된 텅 빈 방들”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평소에 조심하지 않다가 현실에서 노클립해서 나와 잘못된 구역으로 가게 된다면 결국에는 도착하게 될“ 이곳의 이름은 ‘백룸 (backroom)’으로, 이후 2020년대 초중반의 온라인 호러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칠 2019년의 작업물이다. 해당 개념이 발명된 이래로 과도하게 생성될 뒷이야기들과 비교하자면, 포챈의 오컬트 게시판인 /x/에 올라왔던 백룸의 원문은 2010년대를 예비했던 10년 전의 작업물들인, 최초의 슬렌더맨 포스트나 기괴한 조각상에게 특수 격리되는 변칙적 존재라는 설명을 더해 재단의 “오리지널”이 되었던 SCP-173과 많은 지점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주어진 미지의 이미지에 최소한의 맥락만을 더하는 효율적인 서술을 덮으면서, 이 작업물들은 그 효과적인 간명함을 잃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백룸이 정확히 어떻게 해당 스레드에서부터 출현해 온라인에 퍼져나갔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슬렌더 맨과 SCP 173에는 애초부터 깡마른 남자나 기이한 조각상의 이미지에 일종의 플레이버 텍스트(flavor text)처럼 작용했던 짧은 서술이 동봉되었던 것과 달리, 백룸의 이미지-텍스트 조합 쌍은 사후적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커스드의 저주에서부터 분명한 영향을 받았을 “불안한 (unsettling) 이미지”라는 이름의 스레드를 위한 (간만에 ‘짤림 방지’라는 원뜻 그대로 사용된) 짤로, 그 유명한 노란방의 이미지가 부착된다: “그냥 ‘맞지 않게’ 느껴지는 불편한 이미지들을 올리셈(post disquieting images that just feel ‘off’).” 스레드에 간판처럼 달린 노란방이 보여준 텅 빈 실내 공간에 호응하듯, 스레드는 유사하게 커스드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공간의 사진들로 찬찬히 갱신된다. 약 8시간 후에 “백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원문 텍스트가 노란방의 사진에 곧장 부착된다. 해당 공간 자체의 기이함을 묘사하는 단락 밑으로는 좀 더 익숙한 호러 문법으로 완충 작용을 하듯 “가까이에 뭔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었다면 신이 보호해주길 바라야 할 거야, 왜냐면 그것도 당연히 널 들었을 테니까”라는 첨언이 붙긴 했지만. 그렇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다. 백룸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개념으로 착상된 이후, 이것이 하나의 ‘호러’로서 확장되고 확정되어가는 과정이 찾아오니까. 어떻게 보자면, 백룸은 몇몇 영향력 높은 크리피파스타보다도 훨씬 더 집단적이고 익명적인, 인터넷이 돌아가는 방식에 훨씬 더 근접했던 작업물인 셈이다.
/x/에서 2019년 5월 12일에 진행된 이 짤막한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조합으로부터 고작 이틀 뒤, 원 스레드의 대문 이미지와 나중에 부착된 댓글의 시차를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시킨 짤로 이를 직접 묻는 스레드가 열린다. 여기에 쓰인 이미지는 다시 한 번 고작 이틀 뒤, 유명 플랫폼들끼리 그 위상차이와는 상관없이 으레 그래왔듯 옆 동네의 인기 포스트를 퍼 나르는 데에 주력하는 r/greentext와, 비슷하게 온라인 전역의 크리피파스타를 수급하는 r/creepypasta로 백룸의 이미지가 옮겨진다. 마침내 트위터가 증폭장치이자 유통망으로서, 또 유튜브가 재가공 공장이자 저장고이자 편찬실로서 이를 받아먹으며, 몇 번의 매개를 거쳐 하나의 괴담으로 열화된 백룸이 인터넷 전역에 퍼질 채비가 완료된다. 원천과 전파과정 자체가 불분명하게 떠돌아다녔던 과거의 온라인 호러에 비해, 이제는 놀라울 정도로 전문화된 플랫폼 간의 분업이 이렇게 기본적인 이미지와 로어를 함께 생산해낸다. 그 제작공정이 분명해진만큼 발생할 수 있을 기이함의 손실을 막고자 동원되는 이미지들은 커스드의 저주 겸 축복을 받았으며, “최대치로 웅웅대고 지직거리는 형광등의 끝없는 배경 소음” 같이 옅게 깔려 스멀스멀 퍼져나갈 텍스트가 이를 거들어준다. 그렇게 짠, 얼마간의 2020년대를 위한 주술이 완성되었다.
그 이래로 현 시점까지의 약 두 세 해 동안 백룸에서부터 뻗어나간 온라인 호러가 흥미로운 것은, 어느 정도 짧은 이 기간 동안에도 양식의 충분한 흥망성쇠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최초의 백룸 이미지에 나타나는 공간을 좀 더 용이하게 설명하기 위해 문턱 혹은 경계를 뜻하는 “리미널 (liminal)”이라는 단어가 선정되었다. [공간주의]의 게시글이 매우 잘 설명하듯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야 할, 혹은 붐비고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곳들이 어떠한 텅 빈 “사이 공간”이 되었다는 느낌 자체가 백룸과도 같은 공간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커스드의 개념이 웹상에 돌아다니는 온갖 엽기 쇼킹해보이는 짤들에 새로운 개념과 맥락을 부여했듯, 리미널의 개념 또한 유사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에서도 짧은 순간마다 존재하곤 하는 시공을 그럴싸하게 설명해준다. 백룸이라는 단어 자체가 출현하기 불과 몇 주 전 한 호텔의 로비 사진을 올리며 “최근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악몽 같고 압박되는 건축물 (most nightmarish and oppressive bit of architecture i've seen in a long while)”이라고 불렀던 트윗이라거나, 이미 SCP재단의 클래식이자 모던 클래식이 된 항목들에 구현된 대체현실적인 공간이나, 비슷한 시기에 맞아떨어졌던 “개인화된 [슈퍼마리오 64]”로 대표되는 로우 폴리곤 게임 속의 디지털 공간들까지. 현실과 픽션 양쪽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텅 빈 사이 공간, “리미널 스페이스”는 이제 게임이라는 또 다른 대체현실의 물리법칙에 어긋나 지형지물을 유령처럼 뚫고 다닐 수 있는 노클립 현상이 현실에서 일어날 때 결국에 굴러 떨어질 곳이 된다.
이 대체현실은 어느새 현실 공간 자체에, 그보다 정확하게는 현실의 공간들을 인식하는 과정 자체에 침투한다. 크리피파스타로 뒷이야기가 붙여져 캐릭터화된 괴물이나, 현실감각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진위여부 모를 사건들을 다뤘던 온라인 호러는, 어느 순간 이미 지나갔던 과거와 그에 대한 기억에 침투했다. 옛날에 즐겼던 게임과 카툰부터, 예전의 특정한 상황을 찍어 남긴 사진까지 등의 보존된 기록들을 기이하게 만드는 저주가 내려질 때, 과거는 이전보다 조금 더 불안정한 시간대가 되어 현실과 대체현실 사이에서 동요한다. 그러한 대체현실로서의 백룸과 리미널 스페이스가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어쨌든 간에 픽션으로 상정된 존재와 사건, 아니면 특정한 매체나 시간대에 안전하게 가둬졌던 이전의 양식들과 달리, 뒷방의 사이 공간들을 다루는 작업물들이 주위 모든 공간에 대체현실의 겹을 씌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클립 현상은 이제 현실과 대체현실 사이의 어긋난 경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백룸이 존재하는 세계 속에선 누구나 발을 헛디뎌 현실에서부터 노클립될 수 있듯, 현실 인식 또한 어느 순간 노클립됐을 때,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시공이 기이하고 으스스한 리미널 스페이스로 뒤바뀌어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커스드 이미지의 저주가 시간이 지난 만큼 바랜 기억과 기록 속 상황을 얼마든 저주 받은 대체현실로 변환시킬 수 있듯, 리미널 스페이스의 개념은 원인 모를 텅 빔이 느껴지는 시공을 현실에서부터 슬며시 어긋난 뒷방으로 변환할 가능성을 사이 공간을 타고 넘어와 심어놓는다.
그렇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사진의 바깥에서부터 사후적으로 저주를 부여한 커스드가 점차 이미지 자체에 내장된 성질로 퍼져나갔듯, 백룸에서 출발한 개념들이 온라인상에 차차 퍼져나감에 따라 “리미널함”은 특정 시공에 대한 인식보다 공간 그 자체에 귀속되어갔고, 백룸 또한 대체현실에서부터 아예 분명한 실체가 있는 픽션으로 변모했다. 이때 백룸과 리미널 스페이스에 찾아올 익숙한 로어화 과정을 다시 한 번 예비해주는 건,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기 한참 전부터 존재해온 존 쾨니히(John Koenig)의 작업물인 <알려지지 않은 슬픔들의 사전 (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에 등재된 ‘케놉시아 (kenopsia)’라는 단어·개념·감정이다. 케놉시아를 정의하는 문구를, 리미널 스페이스에 대한 합의된 정의와 비교해보자: “모든 인구가 완전히 음지로 가버려, 너무나 현저하게 부재해서 네온사인처럼 빛나고 있는 듯, 그냥 비어있는 것도 아니고 과도하게 비어있는 느낌을 주는 감정적인 잔상. (an emotional afterimage that makes it seem not just empty but hyper-empty, with a total population in the negative, who are so conspicuously absent they glow like neon signs.)” 백룸의 원 텍스트가 현실에서 어긋났거나 그렇게 느껴지는 공간들 자체의 기이함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의 부재가 가져올 공허한 감각에 초점을 두는 편인 리미널 스페이스의 정의는 “원래는 사람들로 분잡했지만 이제는 버려져 조용해진 공간의 으스스하고, 쓸쓸한 분위기 (the eerie, forlorn atmosphere of a place that’s usually bustling with people but is now abandoned and quiet)”를 의미하는 케놉시아와 놀랄 정도로 많이 겹친다. 하지만, 해당 사전에 등재된 또 다른 감정인 손더(sonder)가 나름 여러 군데에 사용되며 고유명이 된 것에 비해 케놉시아가 리미널 스페이스의 개념에 묻혀버린 건, 어떠한 시대착오의 탓 때문도 있겠으나 결국 케놉시아의 개념이 단지 개념으로만 남았을 뿐, 공간에 강하게 얽매이는 밈적인 로어 제조 공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