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중반, 과도기의 풍경
온라인 호러에게 2010년대 중반을 통과하는 시기는 막간처럼 느껴질 만하다. 무대 위에서는, 크리피파스타를 둘러싼 많은 풍경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완결되어가거나 인터넷 바깥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슬렌더맨의 인지도를 훨씬 올려놓은 인디 게임 <슬렌더: 에이트 페이지 (Slender: The Eight Pages)의 규모와 “스토리” 모두가 방대하고 복잡해진 후속작 <슬렌더: 더 어라이벌 (Slender: The Arrival)>에는 <마블 호넷>의 제작진이 참여했고, 2013년에 게임이 발매되고 한 해 뒤에 발생한 악명 높은 피격 사건이 이 도시전설을 셧다운시킨다. 공교롭게도, 사건으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2014년 8월, 채 한 주가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호러 게임들이 나타난다. 먼저 한쪽에서는 막강한 제작진들로 야심을 뽐내는 <사일런트 힐즈>로 존재할 수도 있었을 작품의 티저인 <P.T>가 발매되었다. 작품은 시리즈가 2000년대 초반부터 구축해놓은 심리적 공포를, 짧은 루프의 변주와 편집증적인 공략법으로 성공적이게 현대화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비전은 정식 발매로 실체화되지 못했으며, 그 대신 제작 취소에 따라 이를 재빠르게 낚아채온 다른 서바이벌 형식의 3D 호러 게임들로 산산조각 난 채 퍼졌다. 그렇지만 이쪽의 이야기가 온라인 호러보다 훨씬 오래된 전통을 따르고 있을 때, ARG의 기법으로 로어화된 크리피파스타의 행로는 우연 혹은 필연처럼 닷새 전에 나온 다른 인디 호러 게임에서 결실을 맺었다.
스콧 코슨(Scott Cawthorn)의 <프레디 네에서의 닷새 밤 (Five Nights at Freddy’s)>은 00년대 플래시 호러 게임들만큼이나 값싼 점프 스케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본질적으로는 신속히 대응 못하면 필연적으로 들이닥칠 (그러므로 얼마 있지 않아 구차해질) 깜놀이 요점이었기에, 게임은 생존전략의 모색이 고작인 허술한 시스템을 뒤틀린 80년대 노스탤지어의 애니마트로닉스 괴물들과, 그보다는 그들의 로어로 꼼꼼히 포장했다. 첫 편에서 ‘예전에 나쁜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깔린 뒷이야기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부차적인 미니게임들에 암시적인 떡밥들이 설치되며, 차차 점프 스케어 게임을 가장한 ARG가 되어갔다. 점차로 불어나는 뒷이야기가 퍼즐처럼 제시되는 것에 따라 웹상의 팬덤과 수많은 과열된 분석가들이 “논리적인” 타임라인을 그리는 것부터 특정 등장인물의 정체를 증명하는 것에 달라붙었고, 로어는 점점 깊어져만 갔다. 직전 시기의 슬렌더 맨처럼 빈틈을 타고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해석들을 기입해보거나, .exe게임처럼 불분명한 진위여부와 강탈 가능한 노스탤지어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프레디> 시리즈는 분명한 제작자에 의해 분명하게 창작된 픽션의 분명한 카논을 형성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로어 제어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자면 시리즈의 큰 인기는 크리피파스타와 ARG의 양식들에서 애매모호함과 불분명함을 훌륭하게 다듬어 이식해놓은 효과와도 같았다. 유령같이 배회하던 온라인상의 괴담들과 달리 시리즈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멀끔했으며, 제작자와 팬덤이 합세한 공동 로어화의 공정은 마치 공격적인 애니마트로닉스 괴물처럼 끈덕지고 기계적이었다.
복붙-유통을 위한 용기로 사용되는 저화질의 이미지·영상, 애매모호한 원천에서 분리하기 어렵게 둘러붙은 파생작, 익명의 상상력들로 카논 없이 형성된 느슨한 로어 등 2010년대 상반기의 크리피파스타 양식을 정의 내렸던 특징들은 점차 웹상의 아마추어리즘보다 훨씬 더 고품질의 제작공정 속에서 깎아내졌다. 텔레비전 채널 어덜트 스윔(Adult Swim)은 2000년대부터 잔뼈 굵게 다져온 아마추어 하위문화 수입상 솜씨를 십분 활용해 20세기 하반기 시트콤의 가족주의적인 노스탤지어를 <투 매니 쿡스 (Too Many Cooks)>의 무간지옥 패러디로 변주했고, 특히나 <앨런튜토리얼(alantutorial)>이라는 크리피파스타 시대의 선구적인 시리즈를 제작한 앨런 레즈닉(Alan Resnick)을 데려오기도 했다. 어덜트 스윔의 2010년대를 결정했던 <인포머셜 (Infomercial)>, 그러니까 <팀과 에릭 (Tim & Eric)>에서도 자주 보였던, 정보성 광고의 탈을 쓰고 똥글싸기(shitposting)가 아닌 척 하는 코미디 스페셜에 그는 <곰 영상 무편집본 (Unedited Footage of a Bear)>과 <이 집에는 사람들이 있다 (This House Has People in It)> 같은 단편을 제작한다. 특히나, 로어화를 시도할 수 있을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전면에 배치했던 <앨런튜토리얼>과는 정반대로 <이 집에는 사람들이 있다>에는 솜씨 좋은 파운드 푸티지 단편영화였던 겉면의 뒤쪽으로 로어화를 통한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한 로어와 ARG가 심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자면 레즈닉 본인이 크리피파스타가 뜨고 저물던 시기의 양 끝에서 양극단의 극대화된 사례를 만들어 로어화가 불가능한 양편을 이어놓은 셈이다. 너무 많이 단순하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복잡하거나. 한편, 지난 회차에서 언급했듯, 사이파이(SyFy)에서는 익숙한 크리처물로 크리피파스타를 해석한 <채널 제로 (Channel Zero)>가 방영된다. <캔들 코브>의 원작자로 참여한 크리스 스트라우브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미래를 또 한 번 이르게 준비하지만, 이는 조금 나중의 이야기이다.
딱 봐도 말끔한 외관으로 제작되었으나 ARG나 크리피파스타와 유사한 어법을 따르는 영상들은 유튜브의 훨씬 더 잘 알려진 곳들에서도 왕왕 등장한다. <username666>을 비롯해 00년대 중후반에 알맞은 영상들을 제작한 피로피토(nana825763)는 낡은 집 한 채에 특수효과를 입혀 <P.T>의 호러를 옮긴 듯한 <우리 집 소개 (My House Walkthrough)>를 제작해 크리피파스타 시기와 그 이후에 훨씬 더 알맞게 자신의 비주얼을 조정한다. 팝음악인 파피(Poppy)는 “해독 불가능한” 분위기를 연출한 유튜브 영상 덕에 ARG에 대한 의혹을 타며 경력 초창기의 바이럴한 인기를 누릴 수 있었고, 2010년대의 온라인 컬트를 대표할 힙합 그룹 데스 그립스(Death Grips)는 [사랑 없는 딥 웹 (No Love Deep Web)]의 프로모션을 위해 토렌트(torrent)로의 자체 누출과 함께 온갖 암호해독 프로그램들을 동원해야 하는 ARG를 택하며 인터넷 사람들을 불빛에 모여드는 나방 떼처럼 제어한다. 인형극 중심의 교육용 프로그램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뒤트는 시도는 킥스타터 후원으로 개량된 <안기지마 무서워 (Don't Hug Me I'm Scared)>의 연장된 에피소드에서 펼쳐지는데, 이들은 초기 에피소드가 업로드되었던 2010년대 초반에 “유튜브에서 가장 기괴한 동영상”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던 나름의 “기괴함” 이외의 요소들을 개발하며 자신들을 우아하게 개량한다. 톰스카(Tomska)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인터넷에 해박한 제작자들이 55.06.19 같은 날짜나 ‘로이’라는 이름을 지속적인 떡밥처럼 뿌려댄 채 아무것도 제대로 회수하지 않으면서, 팬덤과 분석채널들의 로어화 기계를 고속으로 작동시켰으니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2000년대부터 건너왔을 즉각적인 온라인 호러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과한 리액션 동영상보다 복잡한 로어에 대한 과한 분석/해석/설명 동영상이 불어나는 꼴은, <가필드>의 진부함을 비꼬았던 2008년 시리즈인 <라자냐 캣 (Lasaga Cat)>이 낡은 아이러니를 유지한 채 9년 만에 제작 품질만을 올려 내놓은 에피소드인 “07/27/1978”와 무척이나 유사했다. 거기선 3컷짜리 코믹 스트립의 모든 “숨겨진 의미”들을 1시간 동안이나 주구장창 설명해대니까.
세기말과 세기 초의 “엽기”가 조금이라도 기이하게 엇나간 듯 보인다면 어디에나 붙여졌던 것과 동일한 일이, 이제 2010년대 중반의 온라인 호러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연재가 진행되며 편집인인 금동현 님과 나누었던 대화 중 “토끼 굴”에 대한 언급이 이와 적확하게 이어질 것이다. 웹상 미스터리들을 파고드는 채널인 프레드릭 크눗센(Fredrick Knudsen)의 시리즈가 “토끼 굴을 타고 내려가 (Down the Rabbit Hole)”라 이름 붙여졌듯, 좀 더 깊숙하고 어두운 곳으로 따라 들어가는 행위에 이만치 잘 맞는 표현도 없을 테니까. 결국에 크리피파스타의 뒷이야기와 ARG의 단서들을 찾아들어가는 행위는, 겉보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그 안쪽, 그 밑쪽, 그 뒤쪽,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라는 미약한 믿음에 따른 사후적인 의미 부여 작업이다. 어디로든 파고들 수 있으며 또 어디로 연결될지 모르기에 잠정적으로 모든 곳과 연결되어 있을 토끼 굴의 형상은, 개인화된 <슈퍼마리오 64> 밈의 인기에 힘입어 새로이 재부상한 빙산 차트의 형태로도 이어진다. 보이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몸집이 깊숙한 바다까지 들어간 모습에서 착안해, 빙산 차트는 진지하건 말건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모두에게 드러난 수면부터 가장 어두운 수심까지 나누어, 분명히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불분명한 것의 단계를 구분한다. 물론 이 또한 보편적이게 알려진 것들을 일반인(normie)스럽다 조롱하면서 컴컴한 음지(와 그 알려지지 않은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자들)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격상시키려는 심리의 한 갈래에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토끼 굴과 빙산 모두가 가시권에서 벗어난 영역, 더 깊고 어두운 곳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점일 테다. 초창기 크리피파스타의 시기부터 착실히 전개된 로어화의 수법이, 이제는 바깥보다 안쪽이 더 거대한 세계를 만드는 제작자들과 그보다도 정말로 그렇건 말건 겉면보다 더 거대한 뒷면을 붙이는 분석가들에게 퍼져나가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