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코브” 괴담을 기억하시는가? 그러니까, 어렸을 적 지역 방송국에서 방영된 어린이 프로그램 <캔들 코브 (Candle Cove)>를 기억하냐고 묻는 글이 “넷 노스탤지어 포럼”이라는 게시판에 올라온다. 전체적인 설정과 몇몇 등장 캐릭터들, 그리고 특정 에피소드의 스토리까지를 상기하는 답글들이 달린다. 기억해보니 그 때에는 마냥 재미나게 보았던 프로그램이 실은 굉장히 기괴한 게 아니었나 하는 회고들이 이어지다가, 급기야 한 유저가 어릴 적에 꾼 줄 알았던 악몽이 모두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에피소드였다는 결론까지 나와 버린다. <캔들 코브>는 정말로, 무엇이었을까? 유튜브에 검색을 하면 실제로 녹화본을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들이 몇 보이며, 2016년에는 미국의 텔레비전 채널 사이파이(Syfy)의 앤솔로지 시리즈 <채널 제로 (Channel Zero)>에서 이 이야기 전체를 드라마화 하기까지 했다. 크리스 스트라우브(Kris Straub)가 2009년에 자신의 웹사이트에 실었던 호러 픽션을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주석과 함께.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캔들 코브 “괴담”을 기억하시는가?

또 하나의 중요한 크리피파스타로서 <캔들 코브>가 시작되는 “혹시 이 어린이 프로그램 기억하는 사람 있어? (Does anyone remember this kid's show?)”라는 질문은 70년대 초반 오하이오 주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제하더라도 너무나도 익숙하다. 단순한 사실 확인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 뒤편에 꿍꿍이가 들어간 채로, 이 질문들은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시청했던 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나, 그러한 캐릭터, 어떠한 일화 등을 기억하냐는 식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캔들 코브> 또한 2010년대가 시작되기 직전에 게재되었다는 사실을 2회차에서 다뤘던 슬렌더맨처럼 하나의 예비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훨씬 오래된 호러에서부터 연원한다. 유년기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특정한 문화적 엔터테인먼트가 지금 시점에서 보니 무서웠거나, 어딘가 한 구석이 이상했었다는 유구한 회고들에서부터 출발한 호러 말이다. 국내 인터넷에서 상대적으로 널리 퍼진 “동심파괴” 같은 표현이 이런 유형의 작업물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언술이 목표하고 있는 바를 잘 드러내기는 할 것이다. 다만 이는 실제 어린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삼았기보다는, 유년기를 확실한 과거로 규정하는 이들을 겨냥한다. 크리피파스타 제조 공정의 재료로서, 이번의 “겉 표면”으로 장착되는 것은 그러한 유년기의 추억을 매개로 보존된 과거들이다. 그 뒷면에 부착되는 로어에는 어린 시절의 작품들에 대한 의구심을 극단적으로 실체화하는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경로로 입수하게 된 버전에서 해당 작품들은 공포스럽게 뒤틀려있고, 심지어 끔찍하게 비극스러운 뒷이야기가 있었다는 등의 괴소문이 뒤따른다. 깜놀을 위해 갑작스럽게 돌출하던 크리피파스타 괴물들의 자리를, 이제는 흐릿한 기억을 타고 서서히 기이하게 출몰하는 과거가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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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징징이의 자살>을 비롯해 <자살하는 쥐>와 <바트의 죽음>, <Sonic.exe> 등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이 원인 모를 제작상의 이유로 각자의 작품 속에서 잔혹하게 찢기거나 짓이겨지고, 어느 순간 이러한 “뒷면”의 실제 존재 여부에 대한 검증이 시작된다. 의미심장한 것은 주로 출처가 잘려나가 떠돌아다니던 이 글귀들이 웹상에서 인기를 끈 다음에서야, 문제의 “원작”을 찾아냈다는 익명의 선언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크리피파스타 원문들은, 작중에서 다루는 영상을 인터넷상에 유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제한을 탈출구로 마련해둔다. 원본이라 주장되는 작업물들은 높은 확률로 기존 방영분들을 편집하거나(대부분의 카툰-괴담들이 그럴 것이다), 아예 2~3차 창작으로서 제작되어(팬 게임으로서 <Sonic.exe>가 유포된 덕에, “.exe” 양식의 인디 호러 게임들에는 재생산 가능한 형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결국 모두가 신뢰할 수 있게 확언되지 않는다. 이런 크리피파스타가 제공하는 환상의 “동심파괴” 에피소드들은 현실의 작품들에 뒷면을 부착해 로어화를 시도하지만, 성공적이었던 괴담들처럼 현실을 갈아 끼우거나 현실의 도시괴담으로 포섭되지 못한 채, 결국에는 파생된 픽션만을 덧댈 뿐이다. 어린이 프로그램부터 당대 유명 카툰과 인기 비디오게임 등 과거의 작품들을 탈취해오는 “동심파괴”형 크리피파스타 작업물들은 익숙하고 친근하게 기억되는 이미지를 훨씬 더 불길하고 사악하게 박살내는 반달리즘처럼 보이기도 한다. 뉴그라운즈(Newgrounds)가 번성할 적의 많은 온라인 상 작업물들이 2000년대식 “충격 효과”를 위해 그러한 접근을 숱하게 하곤 했지만, 다시금 2010년대에 들어 새로운 유형과 규칙의 플랫폼들이 등장함에 따라 충격파 자체가 약화되었다. 개별적인 대상에 대한 향수를 위반하고 공격하는 듯 보이는 이런 작업물들이 약해진 효과에 따라 자연스레 뒤쳐져갈 때, 오히려 기억과 향수로 접속할 수 있는 과거 자체에서부터,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어떠한 섬뜩함이 끄집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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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코브>를 비롯한 “동심파괴”형 크리피파스타들이 일찌감치 나타나던 시점으로부터 10년 즈음 뒤, “모든 <슈퍼마리오 64> 사본들은 개인화되었다 (Every copy of Mario 64 is personalized)”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포챈(4chan)의 비디오게임 게시판인 /v/의 한 스레드에서 <슈퍼마리오 64>에 대한 온갖 음모론들을 다루던 중, “닌텐도의 실험적인 AI가 개별 플레이어만을 위해 조금씩 변경된 버전의 게임을 맞춤 제작한다”는 “이론”과 함께 나타났다. “와리오 출현 사태”를 비롯한 영상들과 함께 유튜브를 비롯한 플랫폼들에 밈적으로 퍼져나간 이 문구는 향수와 추억의 대상을 공포스럽게 로어화하는 시도가 여전하다는 점을 드러낼 테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20년대 초반의 달라진 인터넷 환경에 맞춰 로어화의 공정이 어떻게 변주되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작업물들이 기억의 어떤 측면에 집중하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기에 조금 이르게 끌어올만 하다. “개인화”에 대한 밈과 괴담과 음모론은  10년 전의 작업물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특정하게 변조된 단 하나의 카논을 상정하지 않고, 각 날짜별의 “빌드”에 따라 게임 속에서 각기 다른 기현상이 일어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의 느슨함을 넓게 열어젖힌다. (2D 마리오 시리즈도 물론 대상이었던) .exe류 게임들이 크리피파스타를 얼마든 해석가능하지만 성전과도 같은 원문의 위치로 삼아 3~4차로 파생됐던 것과 달리, “대체현실”들이 제각기 “개인화”된 <슈퍼마리오 64>에서는 모든 작업물들이 적어도 해당 로어 속에서는 말이 된다. <마리오 64>가 알고 보니 음험하고 사악한 창작물이었다는 원 댓글의 친숙한 의도보다도, “다른 사람의 <마리오 64> 사본을 플레이해본 적 있지 않아? 뭔가 조금 엇나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어?”라는 이 질문으로, 불분명한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졌던 ‘엇나감’을 명명하는 순간, 이 틈새는 조금씩 다르게 “개인화”된 호러를 선사하는 “빌드”들로 실체화된다. 이렇게, 으스스한 뒷면을 모두에게 그럴싸하도록 설명하는 이야기로서의 로어는 기억과 현실 모두를 대체하는 것에 성공한다. 동일한 ‘틀린 기억’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만델라 효과를 비디오 게임 노스탤지어로 옮긴 셈이다.

일찌감치 레트로 이미지가 덧붙여진 픽셀 그래픽부터 상대적으로 최근의 복고 대상이 되어가는 로우 폴리곤(low polygon), 현 시점에서는 조악하거나 투박하게 보일 과거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빠르게 옛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인터넷 공간의 디자인 유행 등, 해당 대상이 과거의 산물임을 지시하는 여러 특징들은 다수의 레트로에서는 분명한 과거의 것으로 지명되며 대상들을 추억하는 행위에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도리어 “뭔가 조금 엇나간 기분”이 들도록 조정되어,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조한다. VHS 테이프부터 PS1 그래픽까지 당대의 기술적 한계에 의해 제공되는 분명치 않음은 회고적인 시간적 거리 속에서 기억과 기억된 과거 자체를 훨씬 더 불분명한 것으로 만든다. 과거는 많은 종류의 복고들처럼 더 이상 안전하게 편집되어 이상화되지 않고, 쇼크 사이트와 다르지 않은 (동심)파괴적인 충격 효과만 극대화시키는 접근들은 기각된다. 영미권 2000년대 생의 유년기를 상징할 대상들에 노스탤지어를 덧붙인 컴필레이션 채널이 대부분의 썸네일을 흑백 처리했듯, 추억할만한 과거를 대상 삼는 2010년대 초중반 이후의 훌륭한 온라인 호러들은 시간과 더불어 이에 대한 기억과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모두를 생각해보니 이상하고, 슬쩍 어긋나 있으며, 그러므로 끊임없이 기이하게 느껴지도록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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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홀(Alexander D. “Jadusable” Hall)의 작업물인 <벤 드라운드 (Ben Drowned)> 는, 원래도 분위기가 섬뜩한 편이었던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을 대상 삼아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기반을 깔아 놓는다. <벤 드라운드>가 단순히 텍스트로만 제시되어 파생 작업물을 만들어낸 크리피파스타가 아니라 작성자 본인이 직접 업로드한 게임 실황 영상 들로 이뤄졌다는 것은 3부작으로 확장될 작업물의 첫 부분이 진행된 2010년을 생각해보면 꽤나 이른 예시였다. 이 영상들은 앞서 언급된 팬게임들처럼 점프 스케어와 충격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게임의 코드를 조작해 글리치 현상을 일으켜 그 이미지에 알 수 없는 으스스함을 더했고, 역재생한 음악과 단서처럼 흩어놓은 조막만한 길이의 영상들로 이 분위기를 강화했다. 00년대 초반의 폴리비우스(Polyvius)부터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초기의 히로브린(Herobrine)까지 익숙한 ‘유령 들린/저주 받은 게임’의 괴담이, 이제는 크리피파스타와 그 파생작들이 아니라 단서들을 찾아내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 ARG풍의 로어로 풀어진다. <벤 드라운드>는 홀 본인에 의해 2012년에는 의문의 컬트 집단과 엮인 두 번째 이야기로 진행되었고, 무려 2020년에 다시 돌아와 완결지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안정적인 결말과 통제된 시리즈 진행은 <벤 드라운드>가 여타의 크리피파스타와 달리 시청자들이 내러티브를 짜 맞추게 하는 ARG적인 성격을 띠었고, 이를 진두지휘하는 제작자가 매우 뚜렷했기에 가능했을 테다. 달리 보자면, 이는 분명함이 희미한 괴담이 자연스레 제작된 픽션의 분명함으로 이행되는 과정의 결론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호러의 힘을 감쇠시키는 그 분명함 덕에 크리피파스타의 만신전에 들 수도 있었다. 거기서는 설명되지 못하거나 그럴 수 없기에 무서워지는 괴담과 모든 걸 “말이 되는” 이야기로 설명하려는 로어화 사이의 생생한 충돌이 전면적으로 벌어지지만, 이면에서는 기억에 향수를 입혀 이상화된 과거로 제작된 겉면을 상대로, 뒷면을 장착해 과거와 과거의 대상, 그리고 과거의 대상을 기억하는 행위 전체에 기이함을 부여하는 공정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일종의 전제조건처럼 과거를 알맞은 양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온라인 호러는 그만의 “시간적 배경”을 갖게 된다. 무언가가 익숙한 듯 살짝 어긋나게만 느껴지고, 때때로 그 어긋남이 글리치처럼 튀어나와 익숙함을 뒤집어버리는, 분명치 않게 조절된 인공적인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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