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강덕구라고 합니다. 콜리그라는 비평 공유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요, 이런저런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마테리알 운영진분들이 제안 주셨을 때는, 제가 했던 여러 활동들을 경험담 위주로 정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는데, 그러기에는 제가 한 시간 십 오 분을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얘기들을 하려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얘기들이 흩어질까 봐, 제가 PPT 같은 것들을 전혀 만들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만들어 왔는데요, 혹시 중간에 두서없이 얘기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제가 활동을 언제 시작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말씀드리고 시작을 해야 될 것 같아요. 2016년 3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오큘로라는 잡지로 글 쓰는 걸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사실은 이것도 활동이라고 하면 활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2018년도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4년간이 활동의 시작점, 어떻게 보면 필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빠져 있었던 게 블로그스피어인데요. 당시에 마크 피셔가 죽은 이후였지만, 그 때 그가 운영했던 K-punk라든지 아니면 닉 랜드나 CCRU 같은 묻혀 있었던 블로그스피어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공개서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공개서한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원래 없었거든요, 공개서한은 역사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말없이 있다가 한 20년, 30년 뒤에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말을 안 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개서한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공개서한 이후로 한 1, 2년 있다가 알게 된 건, 시네필 커뮤니티, 어떤 영화 커뮤니티나 관-산-학 네트워크가 저희 예상과는 다르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거였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질문도 사실 여러 개를 만들었었거든요? 다양한 사람들과 직업군, 소비자군에게 이야기를 전한 거죠. 근데 이 영화와 관련된 세계가 생각보다 분리가 많이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씨네스트인가 어디선가 올라왔었던 글인데, ‘왜 영화 만드는 사람들 얘기만 하냐?’, 혹은 ‘왜 여기서 영화일 하는 이너서클 얘기를 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영화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영화 산업은 공개서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부정적인 반응조차도요. 이런 분리가 있었다는 걸, 의사소통을 설계할 때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이것은, 뒤에 이어질 내용이 될 것 같은데, 그때 제가 했던 반성 혹은 회상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시네필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나는 영화만 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의사소통들이 어긋났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들이 콜리그에 글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콜리그의 투고 원칙은, 이걸 애초에 세울 때도 그렇고, 글은 무조건 받자. 명예훼손 급의 어떤 발언들이 있지 않은 이상? 실명을 거론하면서, 모욕죄나 사실관계에 관련된 문제만 없으면, 다 실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저도 글을 시작했을 때 어떤 자격이 있거나 혹은 대학원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글이 어디까지 퍼져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블로그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길이 뭘까 생각하다가, 비평가로서 어떤 자격이나 제한된 지면 없이, 글을 마음껏 실어주자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지금도 사실 그런 마음이 커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콜리그를 조금 더 커뮤니티 형식으로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공개서한 활동을 하다 보니까, 의사소통 과정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 서한에 대한 오해도가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한 활동도 엄밀히 말하면 영화 평론가로서의 활동은 아니었거든요? 한정된 독자 군을 가지고 있다가,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일정부분의 독자들을 잃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이런 상황이면 ‘한 번 막 나가보자’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과정에서 당시에 『프로보커터』, 최근에는 『급진의 20대』 같은 책을 낸 친구 김내훈이 중앙일보에서 진행하는 ‘나는 저격한다’라는 프로젝트에 저를 추천했어요. 이후에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이게 어떤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저한텐 여러 가지 복선들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이를테면 아까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제가 차지할 수 있는 지면이나 제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기회주의로 봐도 무방해요.
또 하나는, 제 생각에 제가 활동하는 곳이나 제가 이렇게 마주 보는 분들과 하는 얘기가 한정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말할 수 있는 토픽이, 옛날에 정성일 평론가처럼 광의의 독자와 만나는 게 아니고, 한정된 독자랑 만난다는 상정이 있었고, 그래서 저는 영화적인 토픽을 나름대로 카모플라주(위장)를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나는 저격한다’를 진행을 한 다음에 블로그에도 소회를 밝혔지만요. 사실상 영화적 토픽이나 제가 이전에 했던 얘기들이 ‘나는 저격한다’의 글에 숨어있었어요. 블로그에 쓴 포효하는 2010년대라는 글은 현재「릿터」에서 연재하는 글의 러프한 초기 버전의 단계이었습니다. 유시민에 대한 글도 사실은 예전에 제가 써 뒀던 글이었고. 영진위에 대한 글도 공개서한에서도 충분히 했던 얘기였거든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너른 독자 군을 통해 실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카모플라주 자체에 없었어요. 칭찬이건, 비난이건 내용물에만 관심을 갖더라고요. 동시에 내가 생각한 게 맞았을까? 이게 도대체… 저는 영화적 형식이라는 것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포나 감정, 불안들을 충분히 담아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비평가로서 시도했을 때마다 어떤, 실패의 경험들이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곤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까? 이를테면 영화 제도 내에서 영화적 형식을 영화적 형식으로만 얘기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영화는 무엇보다 대중예술이라고 봅니다.
영화 비평이라는 게 직업 같은 게 아니거든요. 톰 앤더슨이 한 얘기가 인상 깊었었는데, 자기는 영화 평론가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커리어가 될 수 없다. 영화 평론은 불안정하고 문화 저널리즘에 따라서 자리가 있다 없다 하는 거고 말하거든요. 예전에 빌리지 보이스에서 글을 쓰던 J 호버먼이 잘리고, 영화 칼럼 지면을 잃어서 논란이 되었던 적도 있고요. 이후에는 까이에 뒤 시네마도 인수당하고. 영화 비평이 사실상 저널리즘 영역에서 추방되고 있는 과정의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아예 아무런 스펙이나 자격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 실험실의 쥐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한 번 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돼서 하나씩 하나씩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저격한다’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여러 일들도 겪으면서, 영화형식에 담긴 사회적 함의 혹은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영화라는 매체 혹은 장르를 어떻게 사회적 형식으로 볼 것인가?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건 뉴할리우드 영화였습니다. 이건 차차 설명하겠지만요. 시네필로서 저는 뉴할리우드 영화들을 무시하면서 자랐어요. 근데 오히려 여러 가지 실패를 겪다 보니까, ‘내가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서 생각을 해야 될까’라고 했을 때 그게 뉴할리우드였고 최근의 지정학적인 문제나 혹은 이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뉴할리우드를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이어질 얘기들은 왜 지금 뉴할리우드 영화가 필요한 것인가? 느슨히 보면 이게 내가 겪었던 경험과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를 자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콜리그에서도 후원글로 보내 드렸던 글입니다. 수르코프라는 인물이랑 비선형적 세계에 관한 글인데요. 요 근래 우리가 흔히 세계화라고 하는 것, 글로벌화라고 하는 것이 뒤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것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해서 저희가 더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예전에 이라크 전쟁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뭐 여러 가지 국지전들이 있었는데, 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충격적인 것인지를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이게 사실은 ‘민주평화론’이라고, 국제정치학에서 보면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전면전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왜냐면 민주주의는 의사결정 과정이 조금 느리잖아요. 대의민주주의라면 의사를 받아들여서 어떤 결정을 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정상국가, 러시아 같은 경우는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갖고 있지만, 그런 정상국가끼리 전면전을 했다는 데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형식적 민주주의, 러시아적 민주주의 생각을 하면서, 이게 예전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화를 조금씩 어그러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뉴할리우드 같은 경우에 시작됐던 게, <보니 앤 클라이드>(아서 펜, 1967)인데, 그것도 사실은 베트남전이랑도 연관이 되어있었고, 어떤 지정학적인 상황의 변동에 따라서 영화들이 출현했기 때문인데, 이것이 저희가 뉴할리우드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수르코프라는 인물은 러시아의 괴벨스, 꺼삐딴 리 같은 사람이에요. 원래는 경호원 일을 하다가 PR 광고업자로 활동을 했고 광고 홍보 대행사를 하다가 정치 홍보까지 맡게 되는 그런 인물입니다. 이게 저희가 민주주의라고 했을 때 생각하는 누군가의 의사를 받아들여서 대의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소위 말해서 러시아의 관리 민주주의, 어떤 경영관리자가 민주주의 체제를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수르코프를 다룬 글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모스크바는 아침에는 과두정치가 되고 오후에는 민주주의가 되고 저녁에는 군주제가 되고 취침 시에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수르코프는 시민포럼과 인권 NGO에 자금을 대고 동시에 NGO를 비판하는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열적인 현상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것은 수르코프라는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이런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 세대는 아니지만,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안 세계화 운동이라고 세계화 비판하고 다국적 기업 비판하고 그런 운동들이 있었는데, 그때랑 지금의 극우 민족주의는 다른 거 같아요. 이를테면 인터넷이나 SNS가 존재하고 있고, 그런 인프라를 활용해서 다시 민족주의적인 운동이 돌아오고 있는거죠. 과거가 제일 첨단의 테크놀로지로 돌아오고 있다는 게 흥미롭스니다.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동적평형의 세계, 그러니까 초규범화의 세계가 이미 도래한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울리히의 벡『위험사회』라는 책을 보면 현대 사회가 미래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부의 재분배를 생각했는데, 오늘날은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거죠. 위기나 위험요소를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거에 있었던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해서 미래에 대항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미래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는 방식은 과거의 데이터를 추적해서 미래에 일어날 어떤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 전부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안정화된 세계, 계속해서 미래에 일어날 변화를 위험으로써 방지하고 그걸 사전에 차단해버리는 그런 세계가 펼쳐진다고 봤습니다.
아울러 민주주의 제도 자체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트럼프 대선 당시에 미국에서 선거개입을 했다는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보면 흥미로운 게,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도『모방 시대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가장 선진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이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선거개입이 일어날 수 있느냐? 근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미국이 여태까지 저질렀던 수많은 선거개입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저질렀던 어떤 범죄들이 있잖아요, 칠레부터 시작해서. 이런 식의 선거개입을 거울상으로 돌려준다는 의미, 러시아가 어떤 정치적 이득이나 국제정치적 이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 선거개입을 한 게, 미국의 만행을 거울처럼 돌려주겠다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는 책이 있었거든요. 너희들이 했던 것들, 너희들이 진보적으로 세계가 나아갈 거라는 민주평화론에 근거해서 국제정치를 주물렀다면, 이제 우리가 너희들을, 미국이라는 선진화된 국가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겠다는 거죠. 이렇게 세계질서가 조금씩 뒤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게 역설적으로 보면 뉴할리우드가 태동했던 시기, 당시의 거대한 혼란기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도 암살, 테러, 급진운동 같은 게 대단히 활발했던 시기이고. 그래서 저는 물론 동아시아의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이런 변화된 상황속에서 영화, 혹은 영화 비평이 어떻게 해서 미래의 조짐들을 잡아내야 될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정세도 이전과 달라지고, 시간성 자체도 흩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도 대단히 냉소적인 형식으로 전화하고 있는데. 그런 전제에서 영화는 어떻게 변하고, 영화비평은 그 징후들을 어떻게 발견할까요.
다음 챕터는 올드 할리우드 애호와 정통 시네필입니다. 뉴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반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서부극이 등장하고, 70년대 새로운 뉴할리우드의 서부극이나 이탈리아 웨스턴들이 나왔을 때 수정주의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많이 얘기되었던 게, 장르가 진화한다. 원래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 속에서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하고 이런 식의 도식이 가다가, 선악의 도덕적인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을 장르의 진화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수정주의 웨스턴이라는 장르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