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윤원화라고 합니다. 주로 미술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아마도 전체 오늘 내일 발표자들 중에 제가 제일 영화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마테리알》에서 저를 초대하셨을 때는 어느 정도는 외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영화 바깥에서 여러 가지 영상물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고, 미술도 그런 흐름의 한 축을 맡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원래 《마테리알》에서 저한테 제시하신 발표문 제목은 ‘암막커튼 밖으로 나오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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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영화의 분과를 한 걸음 벗어났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하는 건데요. 제가 영상이론과 대학원을 나와서, 여러 가지로 영화의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운동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학교 다닐 때 시각문화 전공 트랙이어서, 영화의 근처에 있었지만 정말로 깊이 들어가진 않았고, 그래서 애써 빠져나온 적도 없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저는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오늘의 발표 제목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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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방은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 환경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기본 환경이기도 합니다. 밝은 방에서는 단일한 스크린이 눈을 독점하지 못해요. 다른 스크린들, 스크린 아닌 다른 시청각적인 것들이 계속 시선을 끌고 있어서, 밝은 방의 거주자는 산만하게 이것저것 볼 수밖에 없죠. 저는 늘 그런 방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의 경우에도, 아마 제가 본 최초의 영화는 TV에서 해 주는 주말의 영화였을 거예요. 저는 제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저를 찾아오는 시각적 흐름 중 하나로 영화를 접했고, 여전히 그런 식으로 간간히 영화를 봅니다. 이렇게 관람자의 주의가 분산되는 상황이 새로운 건 아녜요. 멀리 가자면 영화가 등장하던 백 년 전에도 도시는 산만한 장소였죠. 그렇지만 백 년 전과,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뭔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지난 십 년을, 길게 잡으면 지난 세기 전환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저의 연구자로서의 대주제인데요.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렇지만 세기라는 건 너무 큰 주제이고, 저는 아직 그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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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여러 가지 창문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강의실이에요. 사실 제가 ‘암막커튼’이라는 말을 듣고 맨 처음 떠올린 것도 영화관이 아니라 강의실이었어요. 요즘에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학생일 때는 강의실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졸업하고 강의를 나가게 됐을 때도,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봤어요. 그러니까 강의실에서 커튼을 치고 어둡게 해서, DVD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인원이 다 함께 영화를 보는 거죠.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이게 가능했어요. 그런데 2010년대 초반부터는 이게 어려워졌어요. 지금도 영화를 수업 자료로 쓸 때가 있지만, 대개는 유튜브로 짧은 클립을 보여 드리죠. 만약에 학생들이 어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으면 좋겠다고 할 때는, 넷플릭스나 다른 VOD로 미리 보고 오시라고 안내를 드리고요.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은 개별적으로 보고 오고, 수업 시간에는 밝은 방에서 그걸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지금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주로 미술사라서, 영화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에요. 지금은 오히려 수업 시간에 20세기 영화를, 일테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같은 옛날 영화를 틀어 줬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끝까지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이제는 그런 접속을 기대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영화가 자동으로 사람들을 매혹했던 때가 있어요. 영화가 여러 분과를 아우르는 일종의 공통 교양이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지금은 영화가 여러 분과들 중 하나일 뿐이라서, 저도 말하자면 이웃집 사람 같은 마음으로 이런 자리에 오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한테 공통분모가 있다면, 공통의 문화보다는 기술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이 먼저일 거예요.

일테면 강의실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도 기술적 문제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영화를 틀어 주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거예요. 저도 집에서 TV로 영화를 볼 때 보통은 다른 스크린을 한두 개 정도 더 열어 놓고 있단 말이에요. 손에 늘 스크린이 들려 있으니까 조금만 딴 생각이 나면 자동으로 다른 창을 열어요. 말하자면 우리는 상시적인 멀티스크린 환경에 살고 있어요. 수업 시간에도, 제가 수업자료를 보여드리는 스크린이 있고 학생들이 각자 보고 있는 스크린들이 있어요. 노트북도 있고 폰도 있고, 그걸로 필기도 하고 자료도 찾고 딴짓도 해요. 각자 의식의 흐름이 스크린에 연동되어 있어서 이걸 막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토킹헤드로서 다른 스크린들과 경쟁하는 일이 되죠. 여기서 역사 선생으로서 진짜 문제는 단순히 강의실에서 영화를 보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20세기의 유산을 21세기의 산만한 매체 환경으로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술적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어떻게 되었냐 하면, 팬데믹 직전에는 수업이 거의 유튜브 디제잉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20세기 자료들이 유튜브에 쌓여 있으니까, 이것저것 틀어서 감각적으로 과부하를 준 다음에, 그 틈에 옛날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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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굉장히 유서 깊은 접근이에요. 1959년에 미국과 소련의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모스크바 미국 박람회라는 행사가 있었는데요. 그때 찰스와 레이 임스가 당대의 미국을 소개하는 멀티 채널 비디오를 제작하면서 이런 전략을 취해요. 여기 보시는 건 개발 과정에서 제작한 축소 모형 사진이고, 실제 현장 사진은 이거예요. 여기 아래에 자글자글 보이는 게 사람들이에요. 머리 위에 대형 스크린을 여러 개 설치하고 한 번에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정보를 과잉 공급해서, 말하자면 관람자를 감각적이고 인지적인 차원에서 굴복시키는 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었습니다. 20세기는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이런 식으로 20세기를 소개하는 멀티 채널 프리젠테이션을 구성할 수 있어요. 실제로 지금은 미술을 포함한 문화산업 전반에서 20세기를 그렇게 재활용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그런 쇼를 보는 것과는 좀 다른 일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팬데믹 이후에는 비대면 수업이니까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감각을 통제할 수 없어요. 그런 와중에 20세기는 더욱 더 현재와 멀어 보이는 과거가 됐고요. 그러니까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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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극단적인 방법은 그냥 20세기 역사를 안 가르치는 거예요. 또는 적어도, 20세기를 다른 많은 시간들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걸 고려해볼 볼 수 있어요. 사실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20세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힘드냐 하면, 이게 그냥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그냥 과거의 선례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하는 어떤 모델을 제공하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그 모델이 형성되던 때와는 달라서 충돌이 있는 거죠. 억지로 20세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 실제로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미술의 경우에는 기존의 유럽과 북미 중심의 미술사를 글로벌하게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20세기 중심의 현대적 질서를 재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20세기의 역사를 지금 21세기의 관점에서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될 거예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한다는 게 아니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거라는 얘기예요.

그렇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이런 접근이 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는 단일 매체 분과이고, 아직 젊어서 20세기 역사가 전부인데, 그 짧은 역사 동안 영화가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구되어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역사를 고쳐 쓴다는 게 단순히 인식의 틀을 재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변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근데 지난 10년 동안, 제가 수업용 영상 자료를 DVD에서 유튜브로 바꾸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실제로 영화과에서도 예전처럼 영화를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그려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하자면 권태기의 연인들의 데이트 같이 된 거겠죠. 그래서 옆집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상황에 대한 쓸쓸한 감정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이 늙어 버렸다는 슬픔, 더는 사랑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고독, 그런 사랑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좌절 같은 거요. 직접적으로 영화의 쇠퇴나 죽음을 말하지 않더라도, 영화 이후에 관한 이야기나 영화보다 포괄적인 범주들, 일테면 무빙 이미지 같은 중성적인 개념을 논할 때도 종종 그런 정념들이 묻어나왔어요.

그게 아주 보편적인 정서였던 것 같지는 않아요. 특히 한국은 영화산업의 세계화, 선진화에 초점을 맞춘 성장 서사가 여전히 가능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어떤 상실감이나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죠. 그러니까 ‘영화가 죽었다’고 하면, ‘무엇이 영화를 죽였는가?’ 라는 미스테리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대체 누가 영화가 죽었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하는가?’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거예요. 그나마 필름이 퇴출되고 디지털로 이제 막 전환되던 시기에는 눈에 보이는 시체가 있으니까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할 수도 있고 이른바 시체 애호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영화는 다음 세대의 테크놀로지로 이전되어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기에 말을 더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무언가 상실되었다는 감각은 찌꺼기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정통 미스테리보다는 말하자면 <신체 강탈자의 침입>에 가까울 거예요. 신체 강탈자, 바디 스내처 이야기는 다들 아실 텐데요. 어떤 외계의 존재,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존재가 인간을 하나하나 복제하고 대체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인간 사회를 점령한다는 거예요. 이 복제자들은 인간과 똑같이 생겨서 알아보기 어려워요. 위화감이 들어도 그것만으로는 저 사람이 복제자라고 스스로 확신하기도 어렵고 남들을 설득하기도 어렵죠. 그러니까 남도 믿을 수 없지만 나도 믿을 수 없어요. 이걸 영화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말하자면, ‘영화처럼 생긴 것이 영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저것이 정말로 영화일까?’ 하는 의혹이 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좋은 영화가 아니다, 또는 영화와 영화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아니에요. 바디 스내처의 무서운 점은 그런 판단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인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필요가 없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언가 불쾌한 것으로 다가와요. 이 위화감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위화감’이라는 단어는 ‘허위’라고 할 때의 ‘위’에 ‘조화’라고 할 때의 ‘화’를 쓰는데요, 그러니까 가짜로 조화로운 척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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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스내처 미스테리의 핵심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우리 스스로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단 거예요. 그래서 나와 나 자신, 나와 남들, 나와 사회의 관계가 보이지 않게 어그러진 거죠. 그러니까 문제는 영화도 아니면서 영화인 척하는 가짜 영화를 색출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은 이 불쾌한 어긋남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결정해야 하죠. 이를테면, 여러분이 많이 보셨을 것 같은 예를 들자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영화의 죽음일까요, 아니면 영화의 계속되는 삶일까요? 영화 속에서 어떤 영화는 분명히 죽었습니다. “유일무이한 예술영화”를 만들던 감독은 죽었고, 업계는 더 이상 그런 영화 문화를 육성하는 데 관심이 없고, 그래서 프로듀서는 영화를 그만두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찬실이라는 이름의 이 PD는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영화를 위한 영화에 자기를 가두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영화와 함께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느끼게 되죠.